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5일 정부의 산업정책이 민간 금융기관과 위험을 부담하는 방식을 통한 간접 지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태국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의 '아시아 2050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현재 세계 경제를 두고 탈세계화와 블록화가 되고 있으며 지정학적 동조성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향후 아시아의 성장을 위해선 정부 역할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기업 비율이 역대 최고치인 17%에 달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1년 내 정상화 되는 기업 비율도 8개 중 1개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이 총재는 "한계기업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정부가 직접 기업을 선택해 지원할 때 정치적 비난을 우려해 중간에 성과가 나빠도 지원을 끊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직접 기업을 선별하기보다는 프로젝트의 위험도에 따라 민간 금융과 함께 리스크를 나누고, 지원 기업의 선정은 민간 금융기관에 맡기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며 "지원받는 기업은 정부 지원 사실을 모르게 돼 성과가 나쁠 때 민간 금융기관이 자금을 회수해 정책 금융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산업정책과 구조개혁을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특정 산업을 먼저 육성하고 그 외부 효과로 경제 전체를 발전시키는 방식에서 산업정책과 구조개혁 중 하나만 선택하지 않고, 경제 전반의 마찰을 줄이는 수평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인공지능(AI)와 같은 전략 산업의 육성이 미래 성장의 핵심 축인 것은 분명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 연금 개혁, 여성·고령층 경제활동 참여 확대 등과 같은 고령화 해결을 위한 구조개혁 투자도 절실한 때"라며 "한계기업의 문제만 보더라도 이들의 신속한 시장 퇴출이라는 구조개혁이 뒷받침돼야 확보된 자원을 새로운 산업정책 재원으로 돌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이 총재는 산업 구조 변화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언급하며 “성장 모델 전환 과정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이해관계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이런 조율이 원활히 이뤄지려면 국가경제가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도록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의 안정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